《존 윅》 스핀오프라고 하면 기대부터 생깁니다.
그런데 《발레리나》는 조금 묘한 영화입니다. 복수극으로 보면 아쉽고, 액션 영화로 보면 꽤 만족스럽습니다. 조니윅 유니버스라는 강력한 세계관을 등에 업고 출발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복수의 감정은 기대만큼 강하게 살아나지 못합니다. 반면 액션만큼은 확실하게 제 역할을 해냅니다.
결국 《발레리나》는 왜 만들었는지보다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더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식어버린 복수 — 너무 멀리 돌아온 감정
《발레리나》의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이브 마카로가 킬러로 성장한 뒤 아버지의 죽음과 연결된 조직을 향해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원래 복수극은 단순할수록 강합니다. 누가 무엇을 빼앗았는지가 분명해야 하고, 관객이 주인공의 분노에 쉽게 올라탈 수 있어야 합니다.
《존 윅》 1편이 강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관객은 존 윅이 왜 총을 들어야 하는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해합니다. 감정이 먼저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발레리나》는 조금 다릅니다. 이브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는 순간과 실제 복수에 나서는 순간 사이가 너무 멉니다. 그 사이 영화는 루스카 로마의 훈련 과정과 킬러 사회의 규칙, 각종 조직과 세계관 설정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합니다.
문제는 그 설명이 길어질수록 복수의 감정은 점점 멀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관객은 이브의 분노보다 설정을 먼저 보게 됩니다. 복수극에서 관객이 가장 먼저 봐야 하는 것은 세계관이 아니라 분노입니다. 그런데 《발레리나》는 그 순서가 자꾸 뒤바뀝니다.
이브가 왜 싸우는지는 이해됩니다. 하지만 왜 지금 당장 싸워야 하는지는 충분히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발레리나 후기를 찾아보는 관객들 사이에서도 초반 전개가 다소 늘어진다는 반응이 적지 않습니다.
커진 세계관 — 장점이자 약점
조니윅 스핀오프라는 점에서 《발레리나》는 생각보다 균형을 잘 잡습니다. 존 윅은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단순 팬서비스에 머물지도 않습니다. 키아누 리브스의 등장은 반갑고, 이 세계관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발레리나》는 조니윅 유니버스가 가진 약점도 드러냅니다.
원래 《존 윅》은 단순한 복수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하이 테이블, 컨티넨탈 호텔, 각종 킬러 조직과 규칙들이 계속 추가됐습니다. 처음에는 신선했던 설정들이 이제는 거대한 세계관이 됐습니다.
문제는 세계관이 커질수록 액션보다 설명이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발레리나》 역시 루스카 로마, 컬트 조직, 할스타트 마을, 킬러 양성 시스템 등 설명해야 할 요소가 많습니다. 세계관은 분명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영화의 속도는 느려졌습니다.
결국 《발레리나》는 세계관 확장에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조니윅 시리즈 특유의 단순함과 속도를 일부 잃어버립니다. 세계관은 커졌지만 반드시 더 재밌어진 것은 아닙니다.
도파민 액션 — 결국 영화를 살리는 것
다행히 영화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왜 만들어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특히 이브가 할스타트 마을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액션의 밀도가 눈에 띄게 높아집니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 《발레리나》는 확실히 살아납니다.
이브의 액션은 존 윅과 다릅니다. 존 윅이 압도적인 숙련도와 피지컬로 상대를 제압한다면, 이브는 더 많이 맞고 더 많이 구르며 싸웁니다. 정면 돌파보다 생존에 가깝고, 총기 액션보다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만약 영화가 단순히 여성판 존 윅을 만들려고 했다면 훨씬 쉽게 무너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발레리나》는 이브만의 액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수류탄, 칼, 접시, 프라이팬, 화염방사기, 소방호스까지 온갖 도구들이 액션의 재료가 됩니다. 특히 화염방사기와 소방호스가 맞붙는 장면은 발레리나 액션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될 정도로 강렬합니다.
현실성을 따지면 다소 과장된 장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액션 영화는 때때로 현실보다 쾌감이 먼저입니다. 그 장면만큼은 《발레리나》가 분명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 냅니다.
물론 《존 윅 4》처럼 오래 회자될 명장면이 많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후반부 액션은 초반부의 느린 전개와 부족한 감정을 상당 부분 만회합니다
결국 《발레리나》는 복수극으로 기억되기보다 액션 장면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마지막 한마디
《발레리나》는 조니윅 세계관의 스핀오프로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 만한 작품입니다. 존 윅이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기대기보다 이브 마카로라는 새로운 인물을 중심에 세우려는 노력도 보이고, 액션 역시 나름의 차별화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복수극으로 보면 감정이 충분히 뜨겁지 못하고, 세계관은 커졌지만 영화는 그만큼 무거워졌습니다.
복수극으로 보면 아쉽고, 세계관은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하지만 액션 영화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후반부 액션은 분명 매력적이고, 몇몇 장면은 조니윅 시리즈와는 다른 방식의 쾌감을 선사합니다.
결국 《발레리나》는 훌륭한 복수극은 아닙니다. 대신 꽤 괜찮은 액션 영화입니다.
복수는 식었습니다. 액션은 살아남았습니다.
추천도 및 평점
추천도 : ★★★☆ (3.5/5)
✔ 조니윅 시리즈 팬
✔ 액션 영화 팬
✔ 아나 데 아르마스 팬
❌ 강렬한 복수극을 기대한 관객
❌ 《존 윅》 수준의 완성도를 기대한 관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