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는 평생 일해 온 가장이 해고 이후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하려는 과정을 그린 블랙코미디입니다.
영화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생존 경쟁과 가장의 불안, 변화하는 노동 환경을 잔혹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보여 줍니다.
개인적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비교적 대중적이면서도, 아이러니와 불편함은 끝까지 놓치지 않은 작품으로 느껴졌습니다.
※ 이 글은 작품을 본 뒤 느낀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며, 관객마다 해석과 평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비교적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복잡하게 꼬이지 않고, 주인공 유만수가 해고된 뒤 다시 자신의 자리를 되찾으려는 과정을 순서대로 보여 줍니다. 하지만 전개가 단순하다고 해서 영화가 가볍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거대한 아이러니를 품고 있습니다. 평생 성실하게 일하며 가족과 집을 지켜 온 사람이, 바로 그 가족과 집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선택합니다. 유만수가 반복해서 말하는 “어쩔 수가 없다”는 변명은 상황의 절박함을 설명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를 가장 잔인하게 비웃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그에게는 분명 다른 선택이 있습니다. 집을 팔 수도 있고, 생활 수준을 낮출 수도 있고, 가족과 현실을 솔직하게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만수는 자신이 이룬 삶의 형태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결국 그는 생존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완성했다고 믿는 삶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선택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유만수가 단순한 악인으로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의 선택은 분명 잘못됐지만, 그가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하는지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영화는 그 이해와 혐오 사이를 계속 오가게 만듭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살인을 정당화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어쩔 수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어쩔 수 없다”고 믿는 인간의 자기기만을 비웃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뒤틀린 생존 — 가족을 지키려다 자신을 무너뜨린다
유만수는 25년 동안 한 제지 회사에서 일한 가장입니다. 안정적인 직장, 아내와 두 아이, 대출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자기 명의의 집, 마당을 뛰어다니는 대형견까지. 그는 영화 초반 가족을 끌어안으며 “다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직장에서 해고된 순간, 그동안 유만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들이 모두 부담으로 바뀝니다. 집은 추억과 안식의 공간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대출이 되고, 아이들의 교육은 자랑이 아니라 매달 빠져나가는 비용이 됩니다. 사랑하는 가족은 위로가 되면서도 동시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삶의 수준을 상징합니다.
유만수는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그는 평생 한 분야에서만 일했고, 자신에게 딱 맞는 집을 사고 고쳐서 그 안에 들어앉았습니다. 식물을 키우고 온실을 만들며,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공간 안에서 안정감을 느껴 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해고는 단순히 직업을 잃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자기 존재와 질서 전체가 무너지는 일입니다. 다시 같은 수준의 직장을 얻지 못하면 가족도, 집도, 자신이 이뤘다고 믿은 인생도 모두 사라질 것처럼 느껴집니다.
문제는 그 불안이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라 살인이라는 방향으로 폭발한다는 점입니다. 경쟁자를 제거하면 자리가 생길 것이고, 자리가 생기면 자신이 채용될 것이며, 그러면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처음부터 잘못돼 있습니다. 산업은 이미 쇠퇴하고 있고, 종이는 태블릿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유만수가 되찾고 싶은 자리는 이미 사라지는 중입니다. 그는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사라지는 과거를 되찾기 위해 사람을 죽입니다.
제가 보기에 유만수의 비극은 해고 자체보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생존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의 형태를 절대 바꾸지 않으려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생존은 점점 더 뒤틀립니다.
유만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인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만든 삶의 모양을 지키려 합니다. 그 집착이 결국 가족과 자기 자신까지 위협합니다.
블랙코미디의 균형 — 잔혹한데 웃기고, 웃기는데 아프다
《어쩔 수가 없다》는 살인 이야기지만, 상당히 웃긴 영화입니다.
특히 첫 번째 살인 장면은 박찬욱식 블랙코미디가 가장 강하게 폭발하는 부분입니다. 유만수는 오랜 시간 상대를 관찰하고 준비하지만, 실제 살인에 들어가자 실수를 반복합니다. 이성민, 염혜란, 이병헌이 한 공간에서 뒤엉키는 장면은 슬랩스틱에 가까울 정도로 혼란스럽습니다.
상황만 놓고 보면 웃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한 사람은 처음으로 살인을 시도하고 있고, 한 사람은 배우자의 불륜을 알게 되었으며, 또 다른 사람은 불륜과 살인 현장을 동시에 목격합니다. 세 사람 모두 절박한데, 그 절박함이 한 공간에서 충돌하면서 우스꽝스러운 난장판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웃기면서도 묘하게 슬프고, 잔혹하면서도 생생합니다. 특히 염혜란이 연기한 아라는 기존의 익숙한 이미지와 다른 욕망과 위험성을 보여 주며 장면 전체를 끌고 갑니다.
첫 번째 살인 이후 영화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살인은 훨씬 건조하고 아프게 진행됩니다. 유만수가 제거해야 하는 경쟁자들은 사실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모두 같은 업계에서 일했고, 모두 해고당했으며, 모두 생존을 위해 버티고 있습니다.
그들을 죽이는 행위는 경쟁자를 제거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죽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살인 코미디에서 노동과 생존 경쟁의 비극으로 넘어갑니다.
블랙코미디는 계속 웃기기만 하는 장르가 아닙니다. 웃음 뒤에 불편함과 고통이 따라와야 합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첫 번째 살인의 폭발적인 웃음과 이후 살인의 건조한 아픔을 나누며 그 균형을 유지합니다.
이 영화의 웃음은 살인을 가볍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물들이 얼마나 절박하고 우스운 방식으로 무너지는지를 더 잔인하게 보여 줍니다.
불완전한 구원 —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구원받지는 못한다
영화의 결말에서 유만수는 자신이 원했던 것을 손에 넣습니다.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의심도 피하며, 결국 다시 제지 회사에서 일하게 됩니다. 가족의 생활도 유지되고, 딸의 첼로 연주도 계속됩니다. 겉으로만 보면 그는 살인을 통해 구원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결말은 구원이 아니라 또 다른 낭떠러지입니다.
유만수가 되찾은 직장은 더 이상 과거의 직장이 아닙니다. 많은 노동자가 일하던 공장은 자동화되었고, 그는 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태블릿을 들고 AI가 운영하는 공장을 관리합니다. 사람을 죽여 얻은 자리가 결국 곧 사라질 자리라는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그는 한쪽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을 피했지만, 다른 낭떠러지로 옮겨 갔을 뿐입니다. 시대의 변화는 경쟁자를 제거한다고 멈추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람을 죽이고 자리를 차지해도, 산업 자체가 사라지면 그 자리 역시 오래 남지 못합니다.
가족 역시 완전히 지켜진 것이 아닙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시체를 묻는 장면을 목격했고, 아내는 남편이 무엇을 했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진실을 외면하지만, 그 진실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앞마당에 묻힌 시체 위에 자라는 사과나무는 이 결말을 상징합니다. 진실은 묻는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언젠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지를 뻗습니다.
유만수가 나무의 방향을 철사로 조정하려다 가지를 부러뜨리는 장면도 같은 의미로 읽힙니다. 숙련된 정원사라도 나무가 자라는 방향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과 가족, 시대와 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결말이 좋았던 이유는 유만수에게 단순한 처벌도, 완전한 성공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그것을 오래 지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가족은 유지되었지만 이미 내부에서 균열이 시작됐습니다.
유만수는 살인을 통해 자리를 되찾았지만 구원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더 어둡고 불안한 미래로 이동했을 뿐입니다.
마지막 한마디
《어쩔 수가 없다》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비교적 대중적으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어렵지 않고, 전개는 명확하며, 코미디 장면도 강합니다. 그럼에도 박찬욱 감독 특유의 잔혹한 아이러니와 아름다운 미장센은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뒤틀린 생존, 블랙코미디의 균형, 불완전한 구원은 모두 유만수라는 인물 안에서 이어집니다. 그는 가족을 지키고 싶어 하지만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고, 직장을 되찾고 싶어 하지만 사라지는 산업에 다시 들어갑니다.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그 결과는 전혀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믿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그 말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잔혹한 설정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면서도, 노동과 가족, 경쟁과 자동화에 대한 질문을 끝까지 남겼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웃다가 불편해지고, 불편해하다가 다시 웃게 만드는 균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살인으로 삶을 되찾은 남자가, 결국 아무것도 완전히 되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블랙코미디입니다.
추천도 및 평점
추천도 : ★★★★☆ (4.5/5)
✔ 박찬욱 감독 특유의 아이러니와 미장센을 좋아하는 관객
✔ 웃음과 잔혹함이 공존하는 블랙코미디를 선호하는 관객
✔ 해고, 생존 경쟁, 자동화 문제를 다룬 작품에 관심 있는 관객
✔ 이병헌, 손예진, 이성민, 염혜란의 연기를 보고 싶은 관객
✘ 주인공의 극단적인 선택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관객
✘ 살인과 불편한 유머가 결합된 작품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관객
✘ 명확한 인과응보와 통쾌한 처벌을 원하는 관객
✘ 어두운 사회적 메시지 없이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를 기대한 관객